대한제국 황족 오류 바로 잡아야
 
김민수 문화재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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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애널리스트.     © 아산톱뉴스
1897년 10월12일 대한제국 건국 후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1900년 황자(皇子) 의친왕(義親王), 영친왕에게 친왕(親王) 책봉(冊封)하였다. 일제 통감부에 의해 황태제(皇太弟)로 책봉되지 못한 황위 승계 1순위 의친왕(義親王)을 대한제국 3대 황제(皇帝)로 추숭(追崇)하여야 한다.

고조 광무제는 명성황후 민씨, 귀인 장씨, 귀비 엄씨, 귀인 이씨, 소의 이씨, 귀인 정씨, 귀인 양씨 등 총 7명의 황후, 후궁과의 사이에 많은 황자(皇子)들이 있었고, 고조 광무제는 명성황후와의 사이에 장녀인 아지공주를 뒀고, 귀인 양씨와의 사이에서 경운궁에서 태어난 덕혜옹주는 1919년에 대한제국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했다.

제정의 대한제국은 1919년 1월 고조 광무제의 붕어(崩御)로 4월 공화정의 대한민국으로 전환되었으며,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의 직계 후손은 황위 승계 1순위 의친왕의 후손인데 의친왕(義親王)과 10여 명의 후궁 사이에 13황자 9옹주가 있으며 공주는 없었다.

의친왕은 1893년 12월6일 의친왕비 김수덕(金修德)과 혼인하였으며, 1900년 8월 의친왕에 책봉되었으며, 대한제국 육군 부장이 되었고,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취임하였으며, 대한제국 최고의 훈장인 금척대훈장(金尺大勳章)을 수여받았다.

의친왕(義親王)은 2대 순종 융희제의 다음 서열로 황위 승계 1순위이었으나 1895년 일본 정부의 명성황후 시해,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친일파가 득세하였고, 고조 광무제 시위상궁 엄상궁의 견제와 이토 히로부미 일제 통감의 방해로 대한제국 황태제에 책봉되지 못하였다.

1910년 8월 경술늑약 늑결 이후에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하여 대한광복운동가들과 끊임없이 접촉, 교신하며 대한광복운동을 지원하였다. 1911년 11월 33인의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의친왕을 망명하게 하여 대한광복운동을 활성화하고자 한 대동단(大同團)의 김가진,전협(全協)과 망명을 모의하였으나 간도의 안동에서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지만 일본에 저항하여 배일 정신을 지켜내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사동궁에서 임어하다가 1955년 8월 서울시 종로구 안동궁에서 붕어(崩御)하였다.

대한제국 1대 고조 광무제는 아지공주가 있고, 2대 순종 융희제는 공주가 없었고, 3대 의친왕(義親王)은 공주는 없고 9옹주가 있다. 대한제국 고조(高祖) 광무제는 1897년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추책하였으며, 1907년 민갑완(閔甲完)을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하였고, 일제 통감부가 황위 계승 1순위 의친왕(義親王)의 황태제 책봉(冊封)을 막았으며, 1910년 8월 일제의 불법 침략에 의한 경술늑약(庚戌勒約) 늑결은 무효이고, 1919년 1월 고조 광무제의 붕어(崩御)로 4월 상해에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영친왕(英親王)은 대한제국 1대 고조 광무제의 일곱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1895년 일본 정부의 명성황후 시해 후 득세한 명성황후를 모시는 시위상궁(侍衛尙宮)이었던 엄 상궁이고, 1900년(광무 4) 8월 영친왕(英親王)에 책봉되었으며, 1907년 영친왕비(英親王妃) 민갑완(閔甲完)은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되고 택일하여 가례를 올릴 예정이었으나 이토 통감이 영친왕을 대한제국 강제 병합의 볼모로 일본에 데려갔고, 영친왕은 일제에 저항하지 않았으며,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된 민갑완(閔甲完)은 영친왕을 기다리며 책을 벗 삼아 지냈다.


전제군주제의 대한제국은 1919년 1월 고조 광무제의 붕어(崩御)로 4월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으로 전환됐다.

대한제국 황족의 책봉권자인 고조(高祖) 광무제는 1907년 민갑완(閔甲完)을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하였고, 1910년 8월 일제의 침략에 의한 경술늑약(庚戌勒約) 늑결은 불법 무효이고,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민주공화정으로 전환되어 대한제국 황제의 치세는 1919년 4월에 끝났으며, 심청색 이화문 적의(翟衣)는 대한제국 황후, 황태자비와 의친왕비가 착용한 대례복이다. 대한제국 황족이 아닌 일본 왕족 마사코를 일본으로 송환하고 영친왕릉에 영친왕비(英親王妃) 민갑완(閔甲完)을 합장(合葬)해야 한다.

고궁박물관은 제왕기록실과 대한제국실의 대한제국 황실 연표에 1대 고조 광무제(1897-1919), 2대 순종 융희제(1919), 황태제 의친왕, 영친왕비(英親王妃) 민갑완(閔甲完)으로 바로 기술하여야 하며, 대한제국실의 영친왕비 사진을 민갑완으로 교체하고 왕실생활실의 심청색 이화문 9등 적의(翟衣)를 대한제국 황태자비와 의친왕비가 착용한 대례복으로 바로 전시 설명하여야 한다.

기사입력: 2011/08/25 [17:42]  최종편집: ⓒ 아산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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