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값은 안 올랐구나 했더니..."수입입니다"
부산 구포시장 탐방...천정부지 물가, 반가운 마음까지 빼앗아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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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28일), 급한 볼일이 있어 아침 일찍 경남 양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부산 구포시장에 들렀다. 그냥 오려니까 뭔가 허전하던 참에 전철 승객 두 분의 대화에서 나온 "오늘이 구포 장날 아이가!" 소리가 발길을 돌리게 했다. 

국제 항구도시 부산에는 크고 작은 시장이 많다. 특히 북구에 위치한 구포 재래시장은 지하철 환승역이 있는 덕천 로터리와 기차역을 끼고 있으면서도 시골장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어 옛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 경기가 끝난 운동장처럼 썰렁한 구포시장 화장품 가게 앞.     © 조종안


낙동강 하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장날이면 김해, 양산, 밀양, 창원, 울산 등지에서도 상인들이 모여드는 구포시장은 부산에 7년 가까이 살면서 이틀이 멀다고 다니던 곳이어서 듣기만 해도 정감이 간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듯 가던 날이 장날이었던 것.

덕천 지하철역에서 내려 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오늘이 일요일이어서 무척 복잡할 것"이라는 전철 승객의 우려와는 달리 관객이 빠져나간 운동장을 떠오르게 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10분. 장날이 아니어도 손님으로 북적거릴 시간인데, 한가하다 못해 썰렁했다. 

"장사가 젤 힘드는 디가 부산입니더!" 

노점상들의 무표정에서 불경기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손님을 부르다가 지쳤는지 사람이 지나가도 구경꾼처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래도 열이 달아오른 게 있었다. 물가(物價)였다. 채소, 생선, 과일 등에 가격표를 적어 놓았는데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 불경기에 생활이 너무 어려워 부산에서 살기 싫다는 옷장수 아주머니들     © 조종안


손수레에 속옷가지를 펼쳐놓은 아주머니 두 분이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기에 다가가 요즘 장사는 어떤지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부산에 살기 싫을 정도로 장사가 안된다는 하소연이었다. 

"부산에서 40년 가차이 살믄서 경주도 가고, 창원도 가고, 울산도 가고 그라는디 장사가 젤 안 되고 힘드는 디가 부산입니더. 인구가 많은디도 안 되여. (쌓인 옷가지를 가리키며) 이기 버리지도 몬 하고, 부산에 안 살고 싶어예···." 

생활이 너무 힘들어 부산에 살기 싫다는 아주머니는 지역 도시 중에 부산이 가장 경기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불경기가 지속되는 이유는 공장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 아주머니는 그래도 고무공장(신발)이 있을 때가 좋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남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옆에서 지켜보다 답답했는지 거들고 나섰다. 1977년 경남 고성에서 부산으로 이사했다는 그는 올 같은 해는 처음 본다며 다른 지역에서 부산으로 들어오는 화물차는 많은데, 부산에서 나가는 트럭은 거의 사라졌다며 원정하듯 말했다. 

단골로 다니던 정육점은 그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셔터가 내려져 있고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4년 전 우연한 기회에 주인이 고향 사람인 것을 알았고, 장에 갈 때마다 들러 자판커피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던 가게로 일요일에도 영업을 해오던 터여서 안부가 걱정되기도 했다.

천정부지로 오른 물가, 반가운 마음까지 빼앗아가

 
▲ 구포시장 반찬가게 골목. 장날 오후에는 발을 들여놓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는데 한산한 편이었습니다.     © 조종안


그래도 길이 좁은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까 사람 냄새가 났다. 단골로 다니던 반찬가게, 채소가게, 생선가게 앞에는 손님이 두서넛씩 서 있고, 오가는 사람들 발길도 바쁘게 움직였다. 평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짜증스러웠던 경상도 사투리가 반갑게 느껴졌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였다. 1년 전에 비해 작게는 50%에서, 많게는 200% 넘게 오른 가격표들에 반가운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 1시간 가까이 시장을 돌아보는 동안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부산에서 살다가 3년 전 고향으로 이사했다. 그래도 정이 들어 1년에 한두 번쯤은 들르는데 갈 때마다 천정부지로 오른 물가와 상인들의 불만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올해도 단골로 다니던 가게 주인을 만나는 족족 반가운 인사로 시작해서 한탄으로 끝을 맺었다.

 
▲ 반가운 마음까지 빼앗아갔던 채소 가격표들     © 조종안
▲ 시장에 나온 햇사과. 상인은 예년에 비해 30% 정도 올랐다고 하더군요.     © 조종안


채소류는 1년 전만 해도 기본 1000원 하는 품목이 많았는데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하나씩 보였다. 한 개 1000원이던 무는 3000원. 두 개 1000원이던 호박은 하나에 2500원. 한 바구니에 3000원이던 과일(복숭아, 사과 등)은 5000원씩 팔고 있었다. 얼마나 올랐는지 계산하기도 복잡했다. 

단골로 다니던 반찬가게의 겉절이, 파김치, 굴무침, 멸치볶음, 콩자반, 쌈장, 젓갈 등도 엄청 올라 있었다. 특히 겉절이는 2000원어치씩 사다 먹었는데 1kg에 10000원이라 했다. 500g 이하는 팔지 않는다고. 5000원어치가 기본인 셈인데, 값을 올리기 미안하니까 무게로 파는 모양이었다.

 
▲ 서민이 즐겨먹는 생선 고등어. 예전과 달리 한 마리씩은 팔지 않았습니다.     © 조종안


트럭 짐칸에 생선전을 펼친 생선장수 아저씨는 민어 한 마리에 8000원, 갈치는 세 마리에 10000원, 박대는 다섯 마리에 10000원씩 팔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그래도 생선이 가장 싼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모두 수입 생선임을 인정했다. 

고등어 장수 아주머니에게 한 마리에 얼마씩 파느냐고 물었더니 세 마리에 5000원이라며 작년 추석에는 한 마리에 1000원씩 팔았는데 배 이상 올랐다고 설명을 곁들였다. 자기 물건을 싸다고 하지 않고 오른 것을 당당하게 말하는 아주머니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장사? 잘 되제, 그람 너무 잘 된다꼬···."

 
▲ 지독한 불경기를 반어법으로 표현해서 더욱 안타깝게 했던 상추장수 할머니.     © 조종안


시장을 돌아보면서 단골로 다니던 상추장수 할머니를 빼놓을 수 없었다. 시장 입구 한편에 고구마, 상추, 마늘, 깻잎 등을 펼쳐놓고 정구지(부추)를 다듬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인사드리러 왔다고 하니까 "하믄 그래야제!"라며 활짝 웃었다. 

인사를 하면서도 눈길은 앞에 펼쳐진 고구마 가격표로 향했다. 한 바구니에 2000원씩 하던 게 5000원이었기 때문. 깻잎은 1000원, 마늘은 한 보시기 3000원, 한 무더기에 1000원 하던 상추는 2000원이었다. 상추 1000원어치 살 때마다 덤으로 깻잎이나 쑥갓을 듬뿍 집어주던 할머니 모습이 그려졌다. 

요즘 장사는 어떠냐고 물으니까 "장사? 잘 되제, 그람 너무 잘 된다꼬···"라는 대답을 되풀이했다. 불경기여서 죽겠다는 말보다 가슴을 더 때렸다. 장사 잘하시라는 인사를 건네고 발길을 돌렸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장사 잘된다라는 할머니 대답이 자꾸 되뇌어졌다.



원본 기사 보기:신문고
기사입력: 2011/09/01 [05:19]  최종편집: ⓒ 아산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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